얼마 전 신문에 무리한 살빼기를 하다 사망한 여성에 관한 기사가 실렸었다. 그녀는 설사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손가락을 입 속에 넣어 다시 토해 내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살빼기를 하는 여성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과거 필자가 진료한 K양은 지속적으로 이뇨제를 복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뇨제는 소변만 많이 나오게 하지 지방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근래 비만과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시판 중인 비만치료제들(제니칼, 리덕틸)에 대한 열기이다. 이 약의 엄청난 수요는 이상 과열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필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들에 대한 처방전을 부탁받고 곤혹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갑자기 먼 친척이 전화를 해 약을 구해 달라거나, 빼빼 마른 여자 후배도 한번 먹어보겠다고 부탁하는 등 의사로서 그 적응증을 고려할 때 참으로 난감한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결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비만치료제는 식이요법과 육체적 활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체중 감량 프로그램의 일부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질량지수가 25이상이거나 복부비만(허리둘레 남자 90cm, 여자 80cm 이상)이면서 비만 관련 위험인자나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약품이 환자의 체중을 감소시키고 유지시키는 데 효과적이며 심각한 부작용을 낳지 않을 경우 지속적인 투여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상적인 비만치료제의 조건
비만치료제로 공식 허가를 받지 못했으나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는 약물도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미국 FDA가 공인한 약품은 현재까지 올리스타트(제니칼)와 시부트라민(리덕틸) 2개밖에 없다.
일종의 화학적 유도체인 올리스타트(제니칼)는 췌장 및 위의 리파아제를 억제하여 섭취한 중성지방의 가수분해를 억제한다. 이에 따라 섭취한 지방의 약 30%를 대변으로 배출시켜 칼로리 흡수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
이에 반해 리덕틸은 대뇌 식욕중추에 작용하여 포만감과 관련된 신경호르몬인 세로토닌 등의 분비를 조절, 식사시 조기 포만감을 유발하고 식욕을 억제한다. 따라서 이 약물을 복용하면 전반적인 식사량이 줄어들어 칼로리 흡수가 감소됨으로써 살이 빠지게 된다.
물론 이 약들은 다음과 같은 이상적인 비만치료제의 조건을 어는 정도 충족시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만 치료에 특효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이상적인 비만치료제의 조건
· 의존성이 없어야 한다.
· 근육의 소실 없이 지방만 제거해야 한다.
· 장기간 투여해도 체중 감소 효과가 지속되거나 적어도 감소된 체중이 유지되어야 한다.
· 장기 복용 해도 안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비만치료제는 그 자체의 효능보다는 복용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좋고 비싼 약이라 해도 부적절한 환경과 상황에서 사용하면 그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치료제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위의 비만치료제들은 생리적 의존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용자가 지나치게 약에 의존하여 병용해야 할 식이요법이나 운동 등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비만치료제는 장기간 안전하게 시행해야 한다. 즉 비만 환자에게 치료제를 투여하면 체중이 감량되고 일정 기간 체중 조절을 할 수 있지만, 투약을 중단하면 대부분 다시 체중이 증가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이뇨제나 설사제 및 흥분제는 절대 금해야 한다.
비만치료제의 효과는 매우 다양하여 같은 약제라도 효과를 거두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이것은 체중이 20여 개가 넘는 유전자에 의해 조절되고 비만은 서로 우월한 여러 유전자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에서 여러 약제가 순차적으로 사용되거나 약제의 병합요법이 필요한 것처럼 비만도 사람의 상태에 따라 효과 있는 약제의 선택이나 병용이 필요하다.
비만치료제는 크게 식욕 억제, 흡수 억제에 의한 에너지 섭취 저하, 열대사 촉진에 의한 에너지 소비 증가, 그리고 식욕 억제 기능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약제를 적절히 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효과적이다.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은 치료 도중 기력이 빠지는 것인데, 특히 근육이 같이 빠지는 것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보완제로 성장호르몬이 등장했다. 성장호르몬이 유전공학적으로 대량 생산된 후, 지방 산화(散華) 작용을 이용한 비만 치료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식사 제한과 함께 11주간 성장호르몬을 투여한 시험에서 에너지 이용률이 25% 증가하였다는 보고가 있으며, 6개월 동안 치료한 뒤에 체중은 변화가 없었지만 체지방은 5.8kg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성장호르몬은 임상적으로 경제적으로 비만치료제로서보다는 근육량의 증가와 지방의 감소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고 근육을 증강시켜 체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약제로 기대된다.
비만치료제가 전문의약품이어야 하는 이유
누구나 어렵고 고생스럽기보다 쉽고 편하게 살을 빼고 싶어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본인은 힘들게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나 기계가 대신 움직여서 운동 효과를 나타낸다는 각종 기구나 마사지 요법이다.
비만치료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약 한 알만 먹으면 힘들일지 않고도 쉽게 살을 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로 약국이나 병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약물을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보다 쉽게 살을 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식욕억제제를 먹으면 억지로 식욕을 참지 않아도 되고, 지방흡수억제제를 먹으면 간혹 식이요법을 망치는 외식이나 폭식의 영향도 덜 받을 수 있게 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값이 좀 비싸다는 게 흠이지만 그 외에는 대단한 부작용이나 위험성도 없다고 하니, 너도나도 비만치료제를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요 비만 치료제는 현재 자가 선택하여 복용할 수 없는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물론 비만치료제들의 부작용 및 오남용을 막고자 하는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겠지만, 무엇보다도 비만은 체계적이며 다각적으로 치료해야만 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제 처방을 받을 경우, 병원을 방문하여 처방전만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진찰, 검사 및 상담을 받아야 한다. 살을 빼는 데 약물에만 의존하는 것은 총 한자루로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이왕이면 총, 폭탄, 탱크 등의 전력을 적절히 배치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야 승산이 높지 않겠는가?